라이프니츠와 주역: 64괘는 이진법을 앞서 알았을까
2026년 10월 24일 업데이트
네, 실제로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널리 알려진 이야기보다는 범위가 좁습니다. 1703년 철학자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예수회 선교사 요아킴 부베에게서 64괘를 배열한 중국의 그림 한 장을 받았습니다. 음효를 0, 양효를 1로 읽으면 이 배열은 이진법으로 0부터 63까지 차례로 셉니다. 그러나 라이프니츠는 이미 혼자 힘으로 이진법 산술을 만들어 둔 상태였고, 그 그림은 고대의 것이 아니었으며, 주역 경문은 그것으로 무언가를 계산한 적이 없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역사와 전설을 어떻게 가려낼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중국을 알기 전의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는 오랫동안 0과 1만 쓰는 표기법을 궁리해 왔습니다. "이진(dyadic)" 진행에 관한 그의 원고는 1679년의 것으로, 괘를 접하기 훨씬 전입니다. 그는 중국에도 깊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수회 선교 보고서를 엮은 Novissima Sinica(1697)를 편집했고, 강희제의 궁정에서 일한 선교사들과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요아킴 부베(白晉)입니다. 프랑스 예수회 수사이자 수학자로, 청나라 궁정에서 여러 해를 보내며 주역을 깊이 공부했습니다. 부베는 훗날 "형상주의자(Figurists)"라고 불린 작은 흐름에 속해 있었는데, 이들은 가장 오래된 중국 고전에 성경과 공유하는 태초의 계시가 흔적으로 남아 있으며, 팔괘를 만들었다는 전설 속 인물 복희(伏羲)가 그 고대 지혜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믿었습니다.
1703년에 도착한 것
라이프니츠는 부베에게 자신의 이진법 체계를 설명했습니다. 부베는 1701년 11월 베이징에서 긴 답장을 썼고, 거기에 두 가지 괘도를 목판으로 찍은 그림을 동봉했습니다. 64괘를 둥글게 늘어놓은 원도와 8 × 8로 짠 방도였습니다. 이 편지는 1703년 4월에 라이프니츠에게 도착했습니다.
이것은 중국에서 복희 순서(伏羲六十四卦次序 및 方位圖)로 알려진 배열로, 주희가 『주역본의』(周易本義) 첫머리에 실어 둔 것입니다. 라이프니츠는 곧바로 알아보았습니다. 음효를 0, 양효를 1로 하고 맨 아래 효를 가장 높은 자릿수로 두면, 이 순서의 괘들은 곤괘 ☷☷(000000, 0)에서 시작해 박, 비, 관을 거쳐 건괘 ☰☰(111111, 63)까지 이어집니다. 완벽한 이진법 셈입니다.
같은 해 그는 파리 과학 아카데미에 논문을 제출했고, 이 논문은 1703년도 Mémoires에 실렸습니다. 제목은 대략 "0과 1이라는 문자만 쓰는 이진 산술에 관한 설명, 그리고 그 유용성과 그것이 복희(Fohy)의 고대 중국 도형에 비추는 빛에 관한 소견"입니다. 라이프니츠는 복희 도형의 잃어버린 의미를 되찾았다고 믿었습니다. 고대의 성인은 이진수를 알았는데 후대의 중국 학자들이 그것을 잊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 닮음은 진짜인가
이 닮음은 입맛대로 골라 읽어서 생긴 우연이 아닙니다. 복희 순서는 송나라 철학자 소옹(邵雍, 1011–1077)이 "배로 늘리기"(加一倍法)라 부른 규칙으로 만들어집니다. 음과 양에서 시작해 각각 위에 음과 양을 올리고, 다시 올리기를 여섯 효가 될 때까지 되풀이합니다. 이것은 이진수가 자라는 방식 그대로입니다. 한 자리씩 늘 때마다 가짓수가 두 배가 됩니다. 같은 순서의 팔괘(곤, 간, 감, 손, 진, 리, 태, 건을 거꾸로 읽은 것)는 0부터 7까지의 수입니다. 그러니 이 그림은 정말로 이진 수열이고, 소옹은 정말로 같은 논리로 그것을 만들어 냈습니다.
계사전의 "易有太極,是生兩儀,兩儀生四象,四象生八卦"(역에는 태극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고, 사상이 팔괘를 낳는다)라는 구절을 소옹과 주희는 이 배가법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계사전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 닮음이 증명하지 못하는 것
- 복희의 그림이 아닙니다. 송나라 전통은 이 배열을 복희에게 돌리지만, 소옹 학파보다 이른 자료에서는 이 배열이 보이지 않습니다. 전설의 복희로부터 대략 2천 년 뒤의 일입니다. 전해 내려오는 주역은 다른 순서, 곧 문왕 괘서를 쓰는데, 이는 짝을 이루는 원리로 짜여 있어 전혀 이진법적이지 않습니다.
- 중국에서 이것으로 계산한 사람은 없습니다. 소옹은 이 그림을 우주론과 시간의 순환을 설명하는 데 썼지, 산술에 쓰지 않았습니다. 괘에 기반한 이진 덧셈이나 자릿값 체계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 라이프니츠가 주역에서 이진법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진법을 먼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림은 그를 확신시키고 기쁘게 했을 뿐, 가르쳐 주지는 않았습니다.
- 컴퓨터는 괘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현대의 이진 컴퓨팅은 19세기와 20세기의 불 논리와 전기 공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라이프니츠는 이진 표기법의 존경받는 선조이지만, 1703년 논문에서 실리콘 칩에 이르는 길은 주역을 거치지 않습니다.
그래도 남는 사실은 여전히 놀랍습니다. 몇 세기와 대륙을 사이에 둔 두 사상가가 둘로 거듭 나눈다는 같은 생각에서 같은 구조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는 구조 자체에 관한 사실이자 왜 괘가 64개인가에 대한 한 가지 이유이지, 고대 중국이 컴퓨터를 발명했다는 주장은 아닙니다.
라이프니츠는 중국에 대해 옳았을까
절반쯤입니다. 그림이 이진 순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옳았습니다. 부베를 따라 그 그림의 연대를 잘못 본 점에서는 틀렸습니다. 그리고 괘가 한 사람의 고대 성인이 남긴 보편적 상징 언어라는 그의 더 큰 기대는 형상주의의 구상에 속한 것으로, 교회는 훗날 이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중국 학자들도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라이프니츠 자신은 도형에 해석이 필요하다고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그의 흥분을 "주역은 컴퓨터다"라는 이야기로 바꾼 것은 후대의 대중서들이었습니다.
점괘를 읽을 때 이것을 활용하기
이 이야기는 주역을 대하는 방법을 바꾸지 않습니다. 다만 이진법의 관점은 실용적으로 한 가지 쓸모가 있습니다. 모든 괘가 예/아니요 선택 여섯 개일 뿐이므로, 효를 뒤집으면 어떤 괘든 다른 어떤 괘로도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그것이 바로 변효가 하는 일입니다. 점을 칠 때 여섯 효를 상황이 부드러운지 굳센지가 갈리는 여섯 자리로 생각하고, 지괘를 그 여섯 자리 가운데 몇 곳이 뒤집힌 모습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복희 배열을 직접 보고 싶다면 선천팔괘의 괘도와 비교해 본 뒤, 라이프니츠 셈법의 0과 63에 해당하는 제2괘 곤과 제1괘 건을 살펴보세요.